자연 속에 담은 영혼의 색채
DATE 10-11-05 15:47
글쓴이 : 문정 조회 : 525     
 
‘태양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이곳 달라스에도 어느덧 가을이 시작됨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의 가을 만큼 화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이곳의 가을이지만 겨울로 접어드는 잠깐 동안의 지금의 이 시기가 어쩌면 내게는 한 해를 지내는 가운데 가장 소중하게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서늘한 바람과 변해가는 나뭇잎들의 색을 그냥 지나쳐 버리기에는 아쉬운 생각에 지난주에는 시니어 학생들 몇 명을 데리고 가까운 공원을 찾았다.
바로 지척에 두고서도 오랫만에 찾아본 나의 옛 아지트였던 아름다운 오솔길이 있는 그 곳은 몇 년이 지났음에도 어느 곳 하나 변한 곳 없이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저녁노을이 지는 호숫가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운 색채로 우리들을 맞이해주었고 같이 한 학생들은 빛이 주는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사진을 촬영하는라 분주히 움직였다.
     
11월로 접어드는 이 시기에 시니어 학생들에게 야외답사가 웬말이냐고 의아해 하겠지만 그동안 실내에만 갖혀 화실생활에만 젖어있는 그들에게서 뭔가 획기적인 포트폴리오 아이디어 컨셉을 갖게 해주고 싶었다.
매주 학생들에게 작품에 임할 아이디어를 요구해 보지만 그들의 생활환경에서 생각해낼 수 있는 아이디어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지도하는 선생님들의 입장에서는 보다 창의적인 내용을 요구하게 되곤한다.
학생들 더러는 ‘창의적인 컨셉’이라고 하면 추상화를 제시하기 마련이다. 그 때마다 나는 학생들에게 컬리지 보드에서 요구하는 포트폴리오의 ‘창의적인 컨셉’에 대해 다시금 설명하게 된다.
야외에 학생들을 데리고 나온 데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저 단순하게 보여지는 자연풍경의 한 장면이 시간의 빛에 따라, 그리고 감상하는 자의 위치와 마음에 따라 어떻게 달라 보여지는지를 설명하고 싶었고 우리들이 막연하게 확정지어주고 있는 사물의 색이 보편적인 색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페인팅이 전공이었던 나에게 태양빛은 나의 작업 가운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모든 사물을 빛에 주관해서 관찰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나의 사고에 자리하고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학생들과 수업할 때도 색채와 빛의 분산에 대해 강조하게 된다.
‘색(Color)’이란 원래는 색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존재되지 않는 색을 보고 느끼며 색감에 의해서 우리들은 제각기 선호하는 주변 것들을 추구하게 된다.
‘빛은 색이다’라는 말은 이미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증명되어져 왔으며 어느 누구도 그 점에 있어서는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얼마 만큼의 색을 알고  있을까? 처음 미술수업을 하는 아이들은 색의 기본을 단순히 우리들의 눈에 인식되는 보편적인 레인보우 컬러 정도에 의존한다.
난 아이들을 포함해 어른들에게 이르기까지 색채공부에 들어가기에 앞서 프리즘을 통과하는 빛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곤 한다.
우리가 사물을 보고 그 사물에 색이 있다고 느끼고 보는 것, 그 자체가 바로 빛에 의해서 작용된다는 것을 알고 이해한다면, 그림을 그리는 자세 뿐 아니라 그림을 감상하는 태도까지도 바꿔진다는 것을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야외에서 시니어 학생들과 함께한 효과는 화실로 돌아온 그들에게서 곧 바로 보여지기 시작했다.
일상의 색을 무시하고 인체 드로잉을 과감하게 그린과 블루로 바꿔보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실내 인테리어 작품 속에 바닷 속 풍경으로 재구성하는 등 새롭게 시도해 보는 그들의 모습이 이 가을의 모습 못지 않게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감동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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